88년에 한 첫 소개팅



공부가 하기 싫은 토요일 오후에 빈둥거리고 있자 왠지 대학교 막 들어가서 빈둥대던 시간이 생각난다.  


난생 처음으로 한 소개팅은 어머니가 시켜줬다. 

예나제나 어머님과는 공식적인 이야기 이외에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년에 한 네번정도 그러니까 


'분기는 넘기지 말고 자식과 대화를...' 


이라는 어머님의 어떤 신조의 영향으로 뭐 그정도 하고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88년도 5월 어느날인가, 간만에 일찍 집에 들어가 고등어와 함께 밥을 먹고 티비를 보고 있는데 (늘 간마에 일찍 집에 들어간 날은 이런 행동을 했다 -_-;;) 

어머님이 다가오셔서 "소개팅을 하렴" 하셨다. 

보통의 경우라면 "소개팅을 할래? 라고 하여야죠" 라고 반박을 했었겠지만 뭐 어머님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고 

나름대로의 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게다가 요사이 고분고분하게 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네" 하고 대답을 했다.  


뭐 결론은 여기서 늘 하던대로 약간 반항적인 단어를 던지고 투닥거린다음 없었던 일로 했었더라면.... 이지만 뭐 인생은 그런식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다음날 학교를 가려고 옷을 차려입고 나가는 어머니가 부르셨다. 


"옷이 그것밖에 없니?"  


당시는 88년도였고, 나는 고대 1학년생이었고, 게다가 이과대였고, 일주일에 머리를 한 번 감았고, 

대입 이후 어리를 한번도 안깎았고 (맘에 드는 이발소를 찾지 못해서다. 정말이다 -_-a), 

일주일에 많은 날을 서클실이나 학회실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옷이란 것은 신경써본적이 없다.  


"왜? 아들이 부끄러우세요?" 


하고 말을 했어야 옳았을지도 모르지만 왠일인지 나는 고분고분하게 어머님과 그 날 오후 신촌에 가서 돌던지거나 술마시는 것 이외의 처음으로 그 길을 거닐면서 옷을 샀다. 

그리고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들이나 다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지금이야 미용실에서 잘도 머리를 들이미지만 당시는 아는 녀석이 쳐다볼까봐 (왜 창을 투명하게 하는거야!!) 전전긍긍했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그 소개팅이 꽤 운명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늘 그랬던 모습을 싸악 버리고.... 운운.... 처음 만나자마자 손을 덥석 잡고  


"당신과 나는 운명입니다. 이대로 운명을 따르던지 아님 운명을 피해 도망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시다" 


이렇게 말을 했었어야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당시는 내가 잘 가던 술집에 소주 한병이 450원이었고, 일부 선배들은 고무신을 신고다니고, 죽치던 고려다방에 커피값이 500원 (영양빵 포함 ^^) 하던 88년도 였고, 

여자애들과는 생활회화 이외에 대화를 해본적이 없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토요일에 어머님이 코치해준 옷을 어느 정도 수용한 패션으로, 왠일인지 주신 만원을 주머니에 넣고, 

지금은 백화점이 되어버린 신촌시장에 좋아하는 떡집들과 술집들을 지나서,  가격저렴하고 빵도주는 독다방이 아닌, 

이대앞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연대앞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위치에 있는, 30되기 이전에는 절대로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모양의 레스토랑엘 도착했다.  


뻘쭘하고 앉아있는데 하얀 투피스에 긴 머리를 가진 여자애가 하나 와서 내 이름을 묻더니 앞에 앉았다. 


"조금 늦었죠?" 


이 문장을 티비가 아닌 실생활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어머님의 복장코드를 100% 쫓아서 흰 투피스에 견주었어야 됐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평소에도 그렇게 입으시나요?" 하고 물었다.  

"아뇨, 평소에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즐겨입어요" 


라고 그녀가 대답을 했다. 

다시 한 번 티비속에 혹은 무슨 선발대회의 문장이 현실로 구현되는 신비한 순간을 경험했다.  


그 이후 약 한시간 반동안 나는 일방적인 경기를 해야만했다. 

그녀는 이미 내 이름, 학교, 학과, 교회, 교회생활, 어머니, 어머니직장, 어머니 선교활동 등등을 주욱 꿰차고 있었고 

내가 한시간 반동안 알아낸 것은 그녀의 전공하고 학교정도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못하는게 아니라) 정도였다.  


일방적으로 "네, 네" 하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회피하기 위해서 한 마디를 던졌다. 


"우리 나갈래요?" 


불이 켜진 신촌거리로 나와서 걸으면서 주머니 안에 있는 만원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녀는 술을 못마시는 것을 고려하면서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집과 차라리 안주가 풍부한 집을 놓고 고려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그녀가 


"저기요. 고대생들은 미팅나갈때 돈 안가지고 온다면서요?" 했다. 

"아녀, 만원 있는데요" 하자 

"그럼 저녁을 먹으러 가요" 


하면서 정말 30되기 전에는 안가리라고 다짐했던 경양식집으로 갔다. 


뭐 나는 그 돈으로 그정도의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이 영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첫 소개팅을 꿈꾸고 나온 그녀를 아에 무시할 수 없었다. 

남은 돈으로 싼 술집에나 가야겠다라고 생각도 했고.  

밥을 다 먹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일방적으로 "앞으로의 꿈이 뭐냐?", "외국에 나가본적 있느냐?" 등등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나자 9시쯤 됐다. 


"저 통금시간이 몇시세요?" 그녀가 물었다. 

"어? 뭐요? 아 에. 어머님은 걍 무사히 들어오기만을 바라시죠" 라고 대답했다. 


술먹고 난동을 부려서가 아니라 시대가 안좋았다라고 모두 생각을 하자. 


"저는 원래 9시인데 오늘은 특별히 9시30분까지 온다고 했어요" 

"아, 네"  


그래서 버스정류장 까지 바려다주고 나자 왠지 마음이 우울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서 늘 가던 집으로 가자 늘 그렇듯이 친구녀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 옷샀네? 왠일이야?" 

"걍, 마음이 우울해서 쇼핑을 좀 했다" 

"미친넘. 술이나 마셔" 


이런 식으로 그 날이 끝났다. 정신이 약간 머엉해졌을 때 이름을 끝까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닳았지만 뭐.... 하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몇 년 후에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뭐랄까 소설이라도 하나 나왔을 것이지마는 

일생을 통해서 소외되고 불쌍한 아이들에게 봉사하고 싶어서 그 전공을 택했던 그녀는 

내가 복학하고 제때 졸업을 못해서 집에는 비밀로 하고 학비를 위해 열라 알바를 뛰던 그 해에 

나름대로 잘사는 장로님 아들과 결혼을 했다고 결혼식에 다녀오신 어머님이 곱지않은 시선으로 나를 보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음, 결론은.... 

예전 미팅 얘기란 것은 첫 부분은 나름대로 떠올리기 흥미진진하지만 뒤쪽은 다 그렇고 그렇게 끝난다는 것이다.  

논문이나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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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물 정보)

- 글쓴 시기 : 2003년

- 글쓴 장소 : 영국 써리 에그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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