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모를 왜 찍나요?
이렇게 당돌하게 물을 사람은 없지만 로모를 찍으면 뭔가 다른가요?
라는 질문은 몇번인가 받았고 그럴때마다
"에 로모는 다른 사진기 보다도 내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어쩌고"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그러고 나서 두대째의 로모를 사용하는 이 정도에 이르러서 새로운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이 결론은 말하자면 얼마 전에 한국으로 짐을 붙이면서 2200장의 로모를 정리한 앨범을 짐속에 넣으면서 느낀 것이다.
예전이라면, 기억하기 위해서 혹은 다시 기억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라는게 너무나 감정적인 부분이라서 아무리 그 때의 기억을 이렇게 저렇게 살려봐도 뭔가 모자란 것이고 아쉬운 것이다.
요사인 그래서 잊기 위해 로모를 들이댄다.
마치 내 기억의 보조장치처럼 로모에 슥슥 사람들과 건물들과 시간들과 냄새와 소리와 그런것들을 담는다.
그리고는 마치 인터넷 초창기에 어렵사리 구한 야한 사진을 시디로 구워버리고는 그 '존재'가 주는 평안함을 즐기면서
다시는 그 시디를 보지 않는 한이 있어도 마음이 평안한 상태를 즐기는 것이다.
절대로 떠나고 싶지 않은 켄트의 언덕들이나 계속 있고 싶었던 비앤비들이나 이젠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런 인연들이나 계속 들고 살수는 없는 것이니까
- 삼십대다 게다가 샐러리맨이다 - 로모로 슥슥 찍어대고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로모녀석은 나름대로 기계적인 소리를 틱-팅- 하고 질러대지만 녀석도 내가 그리 마음에 담아두고 싶지만 할 수 없어서 자기에세 휙휙 던지는 것을 알아주는게 고맙다.
내일밤에는 로모를 들고 기차역에가서 한장 찍을 생각이다.
런던에서 늦은 밤기차를 타고 아무것도 없은 에겜역에 내려서 너털거리고 언덕을 올라가던 나도 기억하고 싶으니까
혹은 그 때 보고 싶던 얼굴도 기억하고 싶으니까 틱-팅하고 찍어서 로모에게나 줘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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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물 정보)
- 글쓴 시기 : 2003년
- 글쓴 장소 : 영국 써리 에그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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