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위기와 기회
이런 식으로 일주일쯤 보내던 어느 날 기상뉴스를 들으니까 강풍을 동반한 비가 온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니 그림을 봤다).
아침에 모였을때 교수한테
"그러니까염.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염?" 했더니
"이 지방에 내가 8년째 오지만 그런 비바람은 본 적이 없엄!!"
하신다. 뭐 그 말을 믿고 출발해서 사뭇 깊은 계곡에 도착했을 때 쯔음에는 이미 빗줄기는 거세어 졌고 교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 추워져 있었다.
애들 몇몇이 미끄러져 자빠지고, 일부 여자애들이 쿨럭거리기 시작을 했을 때 쯔음에야 우리 교수는
"잠깐 피할 곳을 찾자"
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에 산에서 어디 피할 곳 있단 말인가.
애들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해서 시험과 상관 없는 내가 말을 했다.
"저기염 선생님, 제 생각에는염, 오늘은 필드가 좀 어려울 것 같거든여. 그러니까..."
그랬더니
"그렇겠지? 그럼 전화해서 버스기사보고 오라고 그러지"
라고하신다.
아이들과 나는 환호했으나 계곡이라 신호가 잡히지 않았고, 지금까지 온 길을 다시 걸어서 버스가 있는 길까지 가기에는 넘 멀었고
이런 나무도 없는 계곡에 비가 이런 식으로 계속오면 계곡은 물이 불어날 것 같아서 교수와 헬렌과 나는
'그럼 약간 위험하지만 이길로',
'역시 이 방법밖에',
'그럼 현준이 애들을 뒤에서 몰고'
등등의 대화를 나눈 다음 일단 저 젤 높은 산 꼭대기 까지 올라가서 급경사를 내려가는 가장 빠른 길을 택했다.
그 후로 약 1시간 동안 교수가 길을 찾고 애들은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비바람을 맞아서 이젠 감각이 없어진 손으로 애들 등을 밀어대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큰 길로 나올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우리 귀여운(?) 나오코는 "여기가 어디에염?" 등등의 질문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또 산 정상에서 앞에 보이는 시에라네바다의 웅장함과 검은 구름이 눈을 뿌리는 멋지고 살벌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뭐 위기의 시간이 지나고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반나절의 휴식을 얻었다.
물론 얼어붙은 몸을 녹이느라고 샤워를 좀 오래했지만서도 샤워를 하고 나자 다시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옌과 나는 "바닷가에 왔으면 해물요리를 먹어야돼!!!"에 합의를 보고 차라리 잠을 자겠다는 부체를 놔두고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 동네는 여름한철 장사하는 동네인지라 정작 연 집에 얼마 없었는데.... 차가운 바람을 맞아가면서 이집 저집을 뒤지다가 우리는 문어 그림이 붙어있는 음식점을 찾았다.
"문어가 붙어있으니까 분명 해산물을 팔거야"
"그렇겠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들어가자 정말로 맘좋게 생긴 주인아저씨가 다가왔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달라고 하자
"우린 메뉴가 없어. 내가 그날 그날 좋은 넘들을 가져오거든." 하면서 열심히 스페인말로 떠들었다.
"너 스페인말 좀 하냐?"
"야, 난 영어도 힘들어...-_-;;"
등등의 대화를 하면서 장장 15분에 걸쳐 주문을 했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문어요리, 숯불에 구운 정어리, 치즈, 올리브 그리고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간 샐러드,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각 1인분 이었다.
아저씨는 흡족한 모습으로 들어가서 바케트 빵 썬거 한 바구니와 정말로 거대한 크기의 샐러드와 문어와 감자를 삶고 그 위에 고추가루 살짝 뿌린 것을 들고 나왔고
조금 있다가 2인분이라면서 정어리 12마리 구운 것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일단 양에 약간 기가 죽었지만 정말 열심히도 먹어서 정어리 11마리, 문어 전부 일부 빵과 약 1/2정도의 샐러드를 먹었다.
얼추 다 먹고 스페인식 커피 (아~ 넘 좋다)를 한 잔 씩 주문하자 주인아저씨가 커피를 가져오면서 사진 한 장 찍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리킨 벽에는 그 동안 왔던 손님중에 유명하거나 신기한 사람들 사진이 가득 있었다. 뭐 신기한 사람쪽이겠지만서도....
"그럼요~"
했더니 사진을 파악 찍었다. (혹시나 스페인 여행가시다가 식당에 제사진을 보거든.... 후후후)
커피를 다 마시고 이제 일어나 볼까 했더니 아저씨가 하얀 술병 하나와 스트레이트 잔 2개를 들고 웃으면서 와서는
"이게 전통술인데 한 잔 씩들 해봐"
하고는 두 잔을 따라 놓고 간다.
맛을 봤더니 40도정도의 강한 술이었는데 약간 향기가 진했다.
술을 절반쯤 마시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이번에 검은색 술이 담긴 병을 들고 오더니
"아니 왜 다 안마셨어?"
하면서 술을 권한다.
하는 수 없이 둘이서 홀짝비우고 잔을 내밀고, 조금있다가 이번엔 녹색병이 오고, 잠시후에는 주인아저씨가 시가를 하나씩 돌리고,
조금 있다가 정말로 신선한 새우구이 (단맛이 날정도였다)가 나오고.... 이러면서 손님들과 주인과 즐거운 시간이 지났다.
결국 11시30분정도가 되서야 그 집을 나섰는데 (우리가 젤로 먼저 나왔다) 오전에 생사갈림길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저녁에 즐거운 식사를 하고.... 참 변화가 무쌍한 하루였다.
제 4장 이틀간의 외유
다시 그 다음날 부터 며칠간을 산에서 보냈다.
어느 날 돌아와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데 옌이 부체를 꼬셔가지고 내게 왔다.
"우리 교수한테 얘기해서 하루나 이틀정도 놀러갔다오자"
"응? 근데 교수가 허락을 할까?"
"벌써 말했어. 너도 같이 간다고...."
아아~ 옌은 우리 지도교수한테 가서 '현준이랑 땡땡이칠래요'란 식으로 이미 말한 것이었다.
뭐 어쨌든지 나밖에 운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마는...
암튼 이렇게 되서 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나와 옌과 부체는 르노 클리오를 몰고 이틀동안 1500킬로미터를 달리면서 세빌과 그라나다 지방을 돌아다녔다.
이 여행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여행을 나가보면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다.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세빌에 닿은 것은 10시30분이었다.
겨우겨우 주차장을 찾아서 파킹하고 길거리에 나와서 안되는 스페인어로 떠듬거리면서 길을 묻고 겨우 갈 방향을 찾아내자 애들이 없어진 것이다.
황당함에 거리를 뒤지자 옌은 바겐세일하는 옷가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입어보고 있었고, 부체는 고가구 파는 곳에 가서 주인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애들을 겨우 닥달해서 이동하고 한 곳을 보고 나서 다시 길을 찾고 있노라면 이들 둘이 없어지고... 또 찾고.... 이런식으로 여행이 진행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차로 여행한 경험도 없어서 전혀 내비게이터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이거봐 좀 진정해" 라든가
"너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군"
등등의 더욱 열받게 하는 말만 반복했다. 암튼 원래 5곳도 넘게 볼 수 있었건만 달랑 3군데 보고 세빌을 출발했다.
그라나다도 뭐 거의 같은 식으로 진행했고....
결론은 이거다 여행은 마음 맞는 인간하고 다닐 것.
정작 가장 즐거웠던 날인데 글은 얼마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모두 로모그래피에 담았다.
제 5장 돌아오기
돌아오기 전날 광란의 파티가 있었고....
내가 헬렌과 섹시댄스를 췄다느니, 우리 교수가 만취하여 당구공을 날렸다느니 그런 소문(?)이 날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에 우리팀 모두는 겔겔거리면서 버스에 올랐다.
다시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올라서 잠을 청하는데 기내 방송이 나왔다.
"아, 기장입니다. 즐거운 휴가 되셨는지요? 런던의 날씨는 아 정말 운좋게도 맑습니다. 온도는... 이런 여기보다 1도 높군요. 멋진 날입니다.
아직 3분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정시에 출발하게될 것 같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후후 이 비행기는 관광전용 비행기다. 우스운 기장이군 생각을 하면서 꾸벅거리고 있는데 또 방송이 나왔다.
"아 기장입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기다리던 그 3명이 런던이 아닌 만체스터를 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나쁜 소식은.... 그런데 그사람들이 모르고 이 비행기에 짐을 실었다 이겁니다. 따라서 짐을 꺼내서 그 사람들 짐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얼마 걸릴지 모른다는 거죠.
자, 그럼 기다리는 동안 코메디를 무료로 틀어드리죠~"
하면서 코메디 방송을 내보냈다.
결국 우스운 기장의 비행기를 타고 익숙한 풍경을 내려다 보면서 런던에 도착하고 다시 코치를 타고 너털거리고 걸어서 기숙사에 도착했다.
12월20일에 떠나기 시작해서 완전히 집에 도착한 것이 1월16일이니까....
왠지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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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물 정보)
- 글쓴 시기 : 2003년
- 글쓴 장소 : 영국 써리 에그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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