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쯤에 와서야 지난 여행에 대한 기억들이 흐릿해졌다.
이 정도쯤이 되어서 여행에 대한 글들을 쓰는 것이 내게 좋다.
너무 강렬하게 치우치지 않게.
그렇지만 일상성은 넘어서게....
암튼 스페인 여행은 우리과 2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 야외지질조사였기 때문에 대학원생인 나는 (다른 말로 하자면 학교에서 돈을 받고 가는 입장의 나는)
그래도 2학년들에게 어느 정도는 도움이되어야 했다.
이런 입장에서 떠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알메리아 인근의 지질조사보고서가 되겠다.
그러니가 비전공자들을 위한 것이니까 지질학적인 내용은 2% 이내로 줄이고 뭐.... 여행기가 되겠다.
제 1 장 출발
출발하는 날은 1월2일이었다.
새벽 3시반에 학교를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1월1일을 나는 빨래와 짐꾸리기를 보냈고 공연히 잠을 청했다가 못 일어날까봐
아에 작정을 하고 재미없는 티비를 보면서 꾸벅거리기만 했다.
스페인이라 스페인....
이런 마음으로 컴컴한 새벽에 코치에 오르고 런던 북쪽에 있는 가트윅 공항에 도착을 했다.
가트윅 공항은 뭐 내게 있어서는 '싼 비행기들의 출발지' 라는 의미이다.
이번 여행에 이용된 비행기는 마이트래블(MyTravel)이라는 정말로 싼 비행기였다.
의자는 불편하고 좁고 음료수는 사먹어야 되고 영화나 음악을 듣기 위해선 헤드폰도 돈주고 빌려야하고 뭐 이런 식이였다.
다행히 밥은 나와서 그걸 먹고 눈을 좀 붙이자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있었다.
스페인 남부 해안도시인 알메리아였다.
이 공항은 해얀을 따라서 만들어지 멋진 곳이었지만 지금은 1월이다.
알메리아에서 차를 타고 다시 카보네라라는 작은 동네에 있는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교수의 배려로 우리 아파트에는 30대 중반의 한국사람이자 기독교 신자인 나와
20대 후반의 태국사람이자 불교신자인 옌, 20대 초반의 인도네시아 사람이자 회교도인 부체가 같이 살게되었다.
뭐 공통점이야 한개도 없지만서도 우리 교수는 나름대로 비슷한 애들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배려를 해준 것 같았다.
오후는 자유시간이었기 때문에 짐을 대충 풀고 재빨리 수퍼로 향했다.
스페인의 수퍼마켓은 아침에 열고 1시반이나2시부터 5시까지 문을 닫고 (더운 나라니까) 다시 5시부터 7-8시까지 여는 그런 시스템이다.
수퍼에서 내일부터 필요한 도시락 재료, 과자, 술 등등을 사서 집에다가 쟁여놨다.
그리고는 부체는 침대로 나와 옌은 바닷가로 나와서 해변을 따라 걸었다.
온도는 높지 않았지만 햇살만큼은 따뜻했다.
근처 식당에서 맥주와 피자를 주문하고는 둘 다 다리를 쭉 뻗고 햇살을 즐겼다.
시원한 맥주와 참치와 로즈마리가 잘 조화된 피자를 먹으면서 눈부신 햇살과 바다의 푸른색을 보고 있는 동안 정말 '지중해'라는 단어가 나를 물들이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뭐 여기까지가 즐거운 시간이었고....
제 2 장 현실
이후로부터 약 10일간은 다음과 같이 보내게 된다.
6시30분 기상, 세수 및 도시락 준비 아침먹기
7시30분-8시 인원확인
8시 지질조사 지역으로 출발
오후 12시경 약 20분간 점심식사
오후 5시경 출발장소로 복귀
오후 6시경 숙소 도착
오후 7시 그날의 성과보고를 위한 미팅
오후 8시 아파트 앞 식당으로
오후 8시-10시 저녁식사
오후 10시-새벽 음주 및 가무 에고고....
ㅇ 날씨
내가 크리스마스 동안 놀러갈 곳을 찾고 있을 때 누군가
"스페인으로 가지그래? 남 유럽이니까 별로 춥지 않고 좋을 것 같은데"
라는 말을 해서 스페인을 한 동안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게다가 안달루시아의 해변도시들은... 긴 여름과 그다지 춥지 않은 겨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히나 해변의 숙소들은 난방장치라고는 전혀 없다.
게다가 더위 때문에 스페인의 바닥과 벽은 타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말은 밤에는 담요를 2장씩 덮고 자야할 만큼 춥고 아침에 일어나면 타일의 시원한 감촉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영상 5도에도 덜덜 떨며 잘 수 있다.
ㅇ 음식
스페인은 음식이 넘 맛있고 입맛에 딱 맞는다.
하기사 영국엘 사니까 조금 과장된 표현일 수 있다. (영국살면 어떤 나라 음식도 다 먹을 수 있게된다)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는
곱창전골 (곱창과 순대가 들어있으며 약간 매콤하다),
빠에야 (쌀밥에 게, 새우, 오징어, 닭고기 등이 들어간 전통음식으로 꼭 게장에 밥비벼먹는 맛이 난다),
문어 (삶은 문어에 고추가루를 살짝 뿌려 놓았는데 그 부드러움은 봉초밥의 세키쿠치 쇼타가 울고간다),
장작에 구운 고기류 (닭, 양, 소, 돼지, 생선을 기호에 따라 선택),
햄 (하몽이라고 불리고 100g 단위로 아저씨가 썩썩 썰어준다)
아아 음식 때문이라도 또 가고 싶다.
ㅇ 술
이거 장난 아니게 싸다.
매일 밤 나와 크리스와 마르코는 인근 동네 술집인 뻬드로 아저씨네 집에서 (그 집 아들은 후안) 103이라는 브랜디를 작살내고 있었다.
맥주도 싸고 암튼 술 인심도 열라 좋다.
지금도 우리집엔 스페인 위스키인 103이 한 병 있어서 안달루시아의 추억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ㅇ 산
뭐 지질조사니까 하루에도 산을 몇개씩 넘게 되는데, 우리나라처럼 나무가 있는게 아니고
워낙 건조지형이니까 덤불같은 것들과 선인장들이 산에 있을 뿐이고 많은 부분들이 노출되어 있다.
대부분의 덤불들은 가시를 가지고 있어서 넘어지거나 손을 잘못 짚으면 가시가 꼭꼭 들어간다.
야생 로즈마리가 많아서 녀석들을 밟고 지나가면 기분좋은 향기가 난다.
ㅇ 나비다드 (Navidad)
스페인은 크리스마스보다 나비다드를 더 큰 축제로 생각을 한다.
왜 그 펠리즈 나비다드(Felitz Navidad)라는 노래를 생각하면 된다.
이 축제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 동방박사를 기리는 날이다.
그래서 도시에는 성탄장식이 가득했고 며칠간의 연휴동안 수퍼도 문을 안열고 사람들은 소리 지르며 놀아댔다.
우린.... 뭐 그냥 평소처럼 산위에서 지냈다. -_-;;;
ㅇ 나오코
우리과에 극동 사람이라고는 달랑 나와 학부에 나오코라는 애가 있었다 (이번에 알게되었다)
근데 우리 나오코는 전형적인 일본여자애라서 '하하하' 와 '예스예스'를 오바해서 말할 뿐 속내를 들어내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결국 이 성격은 조교인 헬렌의 눈에 심히 거슬리게 되고 (여자들이란 -_-a) 나오코는 조교가 거부한 학생이 되게된다.
그 이후로 (울 교수의 강력한 광선에 쏘인 다음에) 내가 얘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게 되는데....
처음엔 "저기염 이게 뭐에염?" 하는게 귀여웠으나 15일 내내 똑같은 질문 "여기가 어디에염?" "그럼 이게 뭐에염?"을 해대는 집요함을 당하게 된다.
나오코야 공부좀해....
ㅇ 옌과 부체와 나
옌은 그래도 나이도 있고 여자고 해서 인생이 좀 편하려니 기대를 했으나, 결국
"옌, 너는 시집가기 전에 많은 걸 공부해야 겠다"
라는 말을 하고 만다.
옌은 암거나 잘 먹고, 아침에 깨기 싫어하고, 추위를 혐오하며, 담배를 좋아하고, 샤워를 40분씩, 화장실을 30분씩 사용했다.
부체는 첨엔 암거나 잘먹는다고 했지만서도 회교도인 까닭에 돼지고기는 못먹었고 적어도 30분간 튀기는 식의 음식만을 고집해 집안 공기를 오염시켜댔다.
열라 깔끔이인 까닭으로 같이 방을 쓰는 나를 구박했고 (흑흑-) 샤워를 30분씩 화장실을 20분씩 사용했다.
난 나이도 젤로 많고 암튼 왕같은 생활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결국 나는 10분정도 목욕을 했고 (옌과 부체가 샤워하면 따뜻한 물이 바닥난다) 5분정도 화장실을 이용했으며 아주 많은 설것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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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물 정보)
- 글쓴 시기 : 2003년
- 글쓴 장소 : 스페인 알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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