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하기



뭐 영국을 떠날적에는 '한국이라면야...' 하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도착을 해보니까 한국도 그것도 2년동안 비웠던 한국이란 곳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도착한 첫날, 몸은 '잠을 자야되, 졸려, 아아-' 이런 소리를 질렀지만 시차적응을 위해서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가족들과 중국집에서 시켜먹고 (나이스) 다 보내고 전화 신청을 위해서 전화국으로 갔다. 


"전화 설치하려고요" 

"저기 신청서를 쓰세요" 

"여기... 신청서...." 

"휴대폰 전화 하나 주실래요?" 

"없는데염"  


전화국을 나오면서 왜 유선전화를 설치하는데 무선전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을 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이마트로 이거저거 물건을 사려고 나섰다. 

뭐 당장 나간다지마는 티비는 있어야하고 가스렌지는 있어야 하고 작은 세탁기와 냉장고를 사서 동생주기로 했으니 일단은 다 구입을 할 심산이었다. 


"아, 손님 가스렌지 찾으세요~" 

"아, 예, 이걸 살까나..." 

"아이구 손님 그건 그릴도 없는 가스렌지에요. 사용하기 불편하구요.... 그건 못써요. 이 정도는 되어야..." 


나는 생선을 그릴에 굽지 않고, 도데체 쓸 수 없는 제품을 왜 팔겠다고 내노았는지.  


암튼 그 이후에도 나는 도무지 인간이라면 사용해서는 안되는 단순 밥만 짓고 보온하는 밥솥과 (도데체 이 기능 이외에 이 기계에 바라는 게 뭘까) 

너무 작아서 볼 수 없는 티비를 샀다. 거의 대답은 같았다. 


"도데체 왜 그걸 사느냐. 물론 배달은 안된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이상하게도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가 내가 이런 제품을 사자 얼굴표정을 '뭐야 가난한 넘' 이란 식으로 바꾸고는 사사삭 멀리 가버렸다.  


그렇다고 뭐 나는 몇 달 정도만 간단하게 쓸거니까 화려한 제품이 필요없다거나, 어짜피 내게는 이것도 크다라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그래서 어색하게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 

너무나 졸리고 피곤해서 화도 나지 않았고....  결국 아주 작은 냉장고와 젤 싼 세탁기는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그래봐야 냉장고 세탁기 모두 어머님집에 있는 것들보다 대용량들이다.  


그리고 어제 밥없이는 살아도 인터넷 없이는 못사는 자신을 위해서 다시 KT에 전화를 걸어서  "인터넷을 놓고 싶어요" 했다 


"아, 그러세요 손님. VDSL을 까세요. 6개월 약정하시면.... 1년 약정하시면..." 

"아니 뭐 그런정도까지 필요없고요 ADSL로 언제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약정은...." 

"손님 (타이름조로) ADSL은 느려터져서 못써요. 그리고 약정 안하시면 아주 비싸고요"  


나는 한국에서도 ADSL Lite로 잘 썼고 더군다나 영국에서는 모뎀을 썼기 때문에 또 집에서는 그냥 웹서핑만 하는 정도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전화 상담원의 말투는 그게 아니었다.  

"네"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람들마다 자기 상황에 맞게 옵션을 선택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한국의 그 뭐냐 '전체적인 분위기' 주의에 적응이 아직 안되고있는 것이다.  

아직 휴대폰도 없고 (살 생각도 없지만), 작은 가전제품들을 사용하고, 어떻게든 KT를 설득해서 ADSL을 설치해야하고.... 

어떤 사회든 적응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게 설사 친정같은 곳이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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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물 정보)

- 글쓴 시기 : 2003년

- 글쓴 장소 : 한국 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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