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때 잠깐 동안 문화부장을 했었다.
뭐 문화부장이래서 문화적인 활동을 했다기 보다는 주로 당시에 주요 이슈가 학원 민주화였기 때문에
데모용 찌라시에 들어가는 (아아 상당히 비하하는 표현이군) 글들을 썼었다.
뭐 이런 찌라시들에게서 21세기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 방향을 찾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바를 적절한 선동적 어휘와 정확한 내용전달을 위한 표현으로 채우면 되었다.
게다가 도서관 점거 후에 책상들을 모아 놓고 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전동타자기로 툭툭 거리면서 A4용지를 메꿔 나가고 있었지만서도
결국은 이것도 글 나부랭이라서 밀리면 잘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투쟁이 승리로 끝나고 (결국 총장이 물러나고...등등등)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바라본 친구녀석들이 (녀석들은 쁘띠성향이 짙었다)
나를 무조껀 끌어내서 인천 앞바다에 섬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매일 소주와 늦잠과 어슬렁거림으로 며칠간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서울로 오는 차속에서 녀석들이 내게 다시 문집용 글을 요구해댔다.
"이거 봐 글은 똥이 아니야. 힘을 준다고 나오는게 아니지"
내가 이런식으로 말하자 한 녀석이
"무슨, 글은 똥이야 자꾸 뭔가를 쳐먹으면 할 수 없이 밀려나오지"
그런식으로 무시하고 나를 구박해서 일주일동안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글을 짜냈었다.
(도데체 4번이나 낸 그 문집 누가 가지고 있는거야?)
요사이는 아침에 오면 아무것도 아닌 워드프로그램만을 달랑 화면에 띄워놓고 결론을 쓰고 있다.
내 홈페이지 글들을 읽어보면 대부분 결론은 한 참 뛰어넘어서 써버리거나 처음에 들었던 마음을 투욱하고 던지듯이 끝냈는데
아아 이런식으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마치 이제 거의 끝난 관계의 여자친구가
"그래 그럼 그 이유를 내게 설명해봐!!"
라고 말한 상황이 되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한참동안 저주의 말을 들으면서 상처를 입을테고 (난 의외로 잘 상처를 받는다 - 믿거나 말거나) 뭐라고 잘못 혹은 대충 얘기를 하면
"넌 항상 그런식이야"
라는 톤의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내가 비인간적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그런 상황에서 계속 머리속에 맴도는 생각인
'아아 이걸 순서와 논리에 입각해서 설명을 해야 하겠지만 결단코 싫어!!!'
라는 그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결론은 뭐 이런 식으로의 삶은 외롭다는 것이고 누군가 상냥하게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본 애니에서
"난 사랑을 믿지 않아 단지 상냥함만을 믿지"
라는 대사가 마음을 툭툭친다. 그런데 도데체 누가 내게 상냥하게 대해줬던 적이 있던가?
암튼 논문의 결론을 오늘 어느 정도 내야 저녁을 먹을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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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물 정보)
- 글쓴 시기 : 2003년
- 글쓴 장소 : 영국 써리 에그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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