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태몽 이야기 및 이에 얽힌.... 우리집 전설따라....



예전에 그러니까 한 십 몇 년 전 쯔음에 어머니가 갑자기 내 태몽을 들려줬다. 

어머니야 뭐 늘상 나는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말을 잘 들려주시니 그냥 들었다.   


"..... 그러니까 엄청난 꽃밭을 헤매다가 꽃을 한아름 땄는데.... 너더라"  


이 꿈을 꾸고 나서는 온 집안이 나름대로 손녀(손자가 아니다 -_-;;)를 맞기위한 준비를 했다던가 뭐라나 

암튼 우리 어머니는 애나을때 아플까봐 임신이 사뭇 경과될때까지 열라 배드민턴을 쳐댔고 덕분에 인큐베타에 들어가는 기준을 500g 가까스로 넘기 내가 태어났다. 

(임산부 여러분 임신 후기에 배드민턴 자제해주세요 -_-;;;)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키우신 우리 할머니에게 내 태몽얘기를 들었다고 하자, 


"그래도 사내녀석이 나와서 좋았지. 게다가 너는 꽃이니까 뭐 한자리에 진득하니 있으니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할머니에게 있어서 '좋은 남자'란 한자리에 그러니까 뭔가 한 직장을 계속 파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고 가족도 챙기고 그런 남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울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한량으로 원래는 무슨 의대 다니다가 때려치고 신나게 재산 탕진하며 놀다가 영화수입업자도 하고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수입하고 야하다고 심의 통과 안돼서 죽다 살았다고 한다) 

취미를 위해 당구다이도 직접 입하시고 (그래서 할머니는 당구는 포켓볼인줄 안다) 

또 어느날 갑자기 만주로 가서 무슨무슨 부사장인가 했다는데 어느날 할머니가 집에 쌀 떨어졌다고 하자 소를 한 마리 잡아서 들고오고 (할머니는 "쌀이라니까요" 했단다 -_-;;;) 

처자식 남겨두고 혼자 달랑 월남한 그런 사람이었다. 


덕분에 할머니는 신난다고 의사한테 시집간줄 알았더니 백수였고, 시집살이 하면서 열라 뒷바라지 했더니 

만주로 홀랑 가서는 알아서 오라고 주소만 편지로 던져주고 (그래서 알아서 찾아가고) 

또 38선 갈렸는데 자기만 홀랑 남쪽으로 가벼려서 7살날 울 아버지 데리고 몰래몰래 38선 넘게하고 이 후로도 본인이 주욱 돈을 벌고 살았다.  


여기에 질세라 울 아버지는 할머니표현에 의하면 고등학교까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으나 

대학가자마자 학생운동의 선봉에서서 한일굴욕외교반대니 뭐니 하면서 일종에 지도자급이어서 집에서 돈 다 가져다가 쓰고 경찰피해서 여기저기 도망다니고 

(같이 도망다니던 현 국회의원인 아부지 친구는 잡혀서 결국 대학졸업 못했으나 - 모모의원님 졸업이라뇨 후후후~ 울아버지는 안잡혔다. 나이스!!), 

겨우겨우 당시 180cm키와 나와는 다른 외모를 이용하여 여러 여인네들의 도움을 받아 졸업을 했다 

(이 부분은 수많은 다른 필체가 남아있는 아버님의 노트들과 어머님의 증언으로 입증이 된다 -_-;;) 


덕분에 우리집은 아버님 돌아가시자 달랑 지금 어머님 집 하나 남기게 되었고 

5공때는 어머님 안기부 끌려가시고 우리집 저금한거 다 묶여서 (그런 시절이었다) 겨울인데 방 하나만 겨울 불때서 거기서 모여잤다.   


뭐 추세대로 하자면 나도 나름대로 즐거운 인생을 보내야 했으나 앞서 말한대로 내 태몽은 꽃이였고, 

어릴 적부터 돈 벌어오지 않는 남자들에 신물이 난 할머님과 어머님의 처절한 교육이 이어졌고  - 자고로 남자란 돈을 버는 존재다... 이런식의 

고대 합격을 확인한 그 날부터 "네가 학생운동하면 우리 다 자살하겠다" 라는 식의 언질도 있었고  

해서 난 참으로 조용히 대학생활을 9학기만에 우리집에서 고등학교 졸업후 최단기간에 대학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온 사회가 안정적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공사에 입사를 해서 정말로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다.  


뭐 그렇지만서도 늘상 외국 들락거리다가 훌러덩 영국갔다가 2년만에 돌아와서는 찾아간 어머님 집에서 할머니가  


"영국 좋더냐?" 하시길래 

"뭐 좋기는.... 그래도 신났지" 했더니 

"어이구. 저넘의 방랑벽은..." 하시다가 장난으로 

"그래 또 어디 안나가냐?" 하시길래 

"조금 있다가 베트남 한 3년가요" 했다. 그러자 

"에이구 OO 김가 아니랠까봐" 하신다 (울 본관은 여러사람들의 원활한 연애를 위해 빼도록 한다 ^^;;)  


우리집은 이런 면에서는 쿠울하다. 

뭐 상황이 짜증내거나 울고 해도 되는 상황이지만 (아들 둘이서 하나 영국가고 돌아올만 하니까 둘째 미국가고 다시 첫째 베트남가고) 할머니는 


"에미야, 정말로 꽃꿈이었냐? 태몽이?" 했다 

"그럼 엄마는..." 하자 

"그 꽃들이 뛰다니지 않던?" 하신다.  


뭐 십수년만에 태몽이 뭐였는가를 생각해낸 순간이었다. 

흠흠흠, 주제는 태몽으로 꽃밭을 꿈꾸고 아들은 낳으면 어찌되는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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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물 정보)

- 글쓴 시기 : 2003년

- 글쓴 장소 : 한국 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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