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모 흙바닥에 구르다




늘상 모든 일이란게 그렇지만서도 이번 일도 술을 마시다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그게 금요일날 학교가기가 싫은 우울증에 걸려가지고 (혹은 게으름증일수도 있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뒹굴거리면서 온 방안에 내 냄새를 배게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저에요" 

"누구?" 

"아뉘 벌써 잊었단 말야!" 

"오오, 제네바는 괜찮은 거냐?" 

"이거 장난 아녀요 G8 정상회담 한다고 데모하고 때려부시고..."  


제네바의 어느 한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녀석의 전화를 받고나자 못견디게 맥주가 그리웠다. 

그래서 비가 줄줄 오는데 옷을 차려입고 부스스한 머리는 필살 낚시꾼 모자로 감추고 입냄새는 민트로 가리고 밖으로 나갔다. 

리셉션에서 k가 우편으로 현상한 로모그래피를 찾아 보고 있었다. 


"멋진 섬머볼을 보내라구~" 

"아아, 비가 온다구요 비가" 

"이거 왜 이래. 영국에 7년째 살고 있는 당신이. 비 정도 가지구" 

"뭐 암튼.... 그나저나 오늘 뭐해요?" 

"당신들은 축제를 나는 궁상을 떨거야" 

"암튼, 즐거운 시간 보내요. 맥주 많이 마시지 말구"  


k의 등을 투투 쳐주고 나서 읍내로 나가서 맥주를 한 박스 샀다.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비를 보고 있는데 한 무리로 부터 전화가 왔다. 

결국 약 두시간 후 한무리의 인간들과 나는 차이니즈 테익어웨이를 먹으면서 맥주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약 11시경이 되었을때 


"여행을 가고 싶어요" 

"아아 차를 몰고 싶지 않아" 

"제 차로 가요. 형은 옆에서 지도만 봐줘요" 

"형님의 여행다니기 테크닉을 전수해줘요" 

"아아 웨일즈웨일즈웨일즈" 


등등의 대화가 이어졌다.  


다음날 나는 이번엔 결단코 차를 몰지 않는 조건으로 웨일즈로 차를 몰았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여행과 이번에는 내가 차를 몰지 않는다는 상황이 나를 관조적으로 만들어서 이전과는 다른 조금은 이상한 느낌의 여행을 했다. 

저녁에 숙소에 와서도 그냥 쿨쿨 자버렸고 다음날 카디프시내를 구경하면서도 '어~ 멋지군' 이라든가 '맘대로해' 등등의 말을 하면서 다녔다.  


카디프성 성벽에서 이런저런 장난을 치다가 잠깐 로모를 옆에 j에게 맡기고 디지털로 뭔가를 찍고 있을 때였다. 

운동신경이 거의 없는 j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주르르 미끄러지면서 로모와 필름과 등등이 좌르륵 젖어있는 진흙에 뒹굴었다. 

로모의 진흙을 슬슬 닦아내면서 뭐랄까 한 삼일간 이어지는 긴 권태를 느끼게 되었다. 

이제 흙을 털고 다시 햇볓 아래로 하는 마음도 들었고.  


결론은 로모를 흙바닥에 굴리고 나면 이런 말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항상 당신과 함께' 


오늘은 내가 들고 있어야 되는 것들 중에 남에게 맡긴게 무엇일까를 자꾸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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