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전 마지막에는 여행을 하다가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지막 날들은 바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논문은 끝까지 나를 붙잡았고, 마지막 며칠간 연속으로 새벽에 울리는 전화들을 받아야 했다.
전화의 내용인즉슨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다시 짐을 싸들고 베트남으로 가라"라는 것이었다.
다시 베트남으로 떠나야 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왠지 못견디게
영국을 떠난다는 마음이 들어버렸다.
새벽 전화로 결국 잠은 깨어 버리고 마음은 뒤숭숭 해져버려서
옷을 입고 로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들어가는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되어버린 우리 과 건물에서 몇번인가 셔터를 누르고
아무도 오지 않은 연구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신 다음 학교를 어슬렁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늘 보던 일상이던 이 풍경이 그리워 질 그 날이 이제 온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서도 아직까지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쇄된 논문의 최종본을 들고 런던에 있는 인쇄소에 가기위해 에그햄역에 나왔다.
처음 내렸을 때 그 무뚝뚝함으로 내 마음의 온기를 다 날려버렸던 에그햄(Egham)역이
이제는 바라보면 그리워지는 만큼 이 나라에 산 것이다
마지막 런던행이다.
마지막 one day travel card를 사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런던에서 모든 게 처음이던 날에 지원님을 만나서 차를 한 잔 했다.
내가 영국에 도착해서 이틀째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영국 로모 앰버시가 있는 패링던(Farringdon) 역에 내려서논문을 인쇄소에 넘기고
몇번인가 고기를 사러 새벽에 달려왔던 축산물 도매시장앞을 지나서 집으로 왔다.
그 다음날은 맑고 화창했다.
2년동안 한 번도 퍼지지 않고 영국에서 프랑스로 벨기에로 스위스로 달려준 골프를 끌고 나가서 세차를 했다.
차를 아는 선배에게 부탁하고 걸어서 집으로 오는데 꼭 처음에 차 사기 전 그 느낌이 났다.
뭐 영국에서의 이별은 BBQ 아니겠어?
고맙게도 후배녀석이 파티를 열어줬다. 돈 많이 들었을텐데 참 고마왔다.
"며칠전에 정원을 정리했어요"
늘 신나는 불놀이 재료가 그 덕분에 생겼다.
음 신기하게도 후배녀석네 정원에 있는 이 연못(?) 속에는 개구리 2마리가 살고 있다.
녀석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결국 밤까지 이어진 파티
역시나 재미있는 불장난
떠나는 날 아침은 그리 감상적이 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마지막으로 짐 챙기고 여권 비행기표 확인하고
공항에 같이 갈 사람들 들이닥치고 짐 옮기고....
화분속에 있는 해바라기는 (해바라기가 얼마나 클 줄 모르고 씨를 심었었다 -_-;;;)
지금 한 후배집 마당에서 꽃이 폈고,
화병속에 (화병은 아니고 와인병이다 - 재활용) 해바라기들은 이 사진을 찍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한국에 와서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는 지금에 와서야 공연히 감상적이 되어버렸다.
Lomo LC-A / Kodak Royal Supra 200 / HP scanjet 3500c
Oct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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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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